일상다반사 5

배추 묶기

얼마 전에, 난생 처음으로 배추를 묶어 주는 일을 여기 와서 해보게 되었다. 추위에 견디고 속을 여물도록 하는, 일종의 월동 준비였다. 나는 두 팔 벌려 배추를 안아 정성껏 묶어 주는데 배추는, 있었는지도 몰랐던 수없는 잔가시로 장갑 안 낀 내 맨 손목을 할퀴어 댔다. 그렇네.. 영혼을 사랑하는데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지. 날 할퀴는 수없는 가시들을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 나 또한 얼마나 수없는 가시들을 숨기고 남을, 또 나 자신을 할퀴고 있었는지.

일상다반사 2015.10.30

지하철에서 생긴 일

지하철을 이용했던 사람이면 누구나 지하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나도 -오래돼서 디테일한 부분이 기억이 나지 않아 무척 안타깝지만 -그래도 잊혀지지 않았던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 중 한 가지 에피소드를 써 보려 한다. 예전에 서울서 인천으로 이사한 후로도 교회는 광명으로 오랜동안 다녔던 나는 집에 오는 길은 거의 지하철을 이용했었다. 일요일밤 9시 넘어서의 1호선은 적당히 붐비기도 하고 때로는 한 두 자리씩 앉을 여유가 있기도 하고 그러했다, 그날은 대부분 자리가 차 있었고 몇몇이 서 있었는데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마 그 앞에 서있던 사람은 좀 연세 들어 보이는 중노인분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내릴 참이라 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상다반사 2015.10.18

싸이 옮김글 2

얼마 전에 싸이월드 일부 기능의 서비스를 중단한단 얘기를 들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조상님격인 싸이에 한때는 나도 충성된 고객이었던 만큼 많이도 올렸던 게시물들이(특히 사진첩이) 어느 순간 전체 서비스 종료로 다 날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그건, 기억을 대신해 차고차곡 보관해 둔 추억의 장면들을 통채로 날리는 거란 말이지. 물론 백업할 수 있도록 서비스도 하는 모양이던데 그런 건 참 귀찮기도 하고 일일이 그렇게 할 만큼 몸이나 맘이 한가하지도 않아서...근데 오늘 인터넷 열어 우연히 본 헤드 기사에 보니 서비스 종료는 안하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거듭난다고 하는 모양이다. 암튼, 생각난 김에 먼지 백만 겹 쌓인 싸이 미니 홈피에 가 보니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일상다반사 2015.09.21

장례식장에 다녀왔던 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 옆 자리에서 근무하시던 사회 선생님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다 갑자기 쓰러지신지 한달여만에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통증이 느껴지던 그 때는 몰랐는데 이미 간암 말기였다고 한다. 근무하는 동안 같이 늦게 끝나면 집 근처까지 태워다 주시고 몇 번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어차피 다 자고 있어서 가서 혼자 먹느니 먹고 들어가시겠다고.. 몸이 안 좋으시다던 그 때도 끝나고 가는 길에 밥 먹고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셔서 감자탕집에 들어갔었다. 근데,몇 술 안 뜨시더니 더이상 못 먹겠다고 그러셨다. 몸이 안 좋으시구나 싶어서 "나중에 몸 좋아지시면 제가 맛있는거 살게요~"이랬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아침에 출근하셔서 낮엔 법률 사무소에 일하시고 오후에는..

일상다반사 2010.12.19

한여름 모기에 대한 단상

다들 그러하겠지만 여름엔 초대하지도 않은 것들이 날 참 귀찮게 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티비를 보거나 할 때 꼭 달라붙어 별 영양가도 없는 내 살을 물어뜯는 이년의 모기들. 한 두번 물어뜯는 것쯤이야 하해와 같은 나의 고매한 인격으로 포용해 주겠지만, 이것들이 떼거지로 몰려들 때는 어느덧 나도 모르게 분노 게이지가 마구 상승하는 때가 있다. 어느날 하던 일을 뒤로 제치고 모기 잡기에 공을 들일 만큼 모기가 많은 날이 있었다. -사실,난 모기 따위를 크게 타지 않는다. 잠에서 일어나서 전날 못보던 빨갛고 앙증맞은 점이 있어서 보면 그것이 밤새 날 공격했던 모기의 흔적이다. 물리면 반경 5mm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올라서 모기 물린 티를 꼭 내는 귀족스런 살갗과 다르게 내 피부는 그까잇 모기독쯤..

일상다반사 2009.07.27